삼생삼세 침상서(아주 재미있음
1부. 보리수 꽃은 다시 피고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어느새 2700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수많은 기억과 아무리 잊으려고 애써도 자꾸만 떠오르던 기억들이 이제는 하나 둘씩 기억나지 않게 되었다.
세상을 등지고 청구에서 지내던 200여 년 동안 아주 평화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200여 년 동안 더 이상 동화를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구중천에 온 후 동화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동화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녀와 동화의 관계는 마치 불교의 선문답과 같았다. 말할 수 없으며, 많이 말할수록 틀리고, 많이 말하기 때문에 화를 입는다.
2부. 범음곡
동화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봉구가 알아차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한참 후 동화가 천천히 말했다.
“너를 안고 돌아오다 상처가 벌어진 것이다.”
봉구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도 안 돼요, 내가 뭐가 무겁다고요!”
동화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내 손이지, 네 몸무게가 아닌 것 같구나.”
봉구가 바구니를 안고 조금 더 다가갔다.
“음, 그런데 제군의 손은 왜 그렇게 약해요?”
제군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건 네가 무거워서란다.”
3부. 아란약 이야기
정은 깊으나 인연이 짧다는 말이 있다.
정이 깊은 것은 그녀요, 인연이 짧은 것은 그녀와 동화였다.
타고난 운이 없다는 말을 하는데 그녀는 정말 운이 없었다.
그래서 그를 만났다.
그 역시 운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놓쳤다.
오늘밤 그녀는 진짜 시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자신이 정말 못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동화제군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고 깨끗이 포기했음에도
덧없는 생이 끝나는 순간 다시 그를 떠올리고 만 것이다.
4부. 그림자 속의 영혼
이것은 아란약의 인생이다.
하지만 봉구는 아란약이 마지막에 웃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기억 속에서 나오니 눈앞에는 새하얀 눈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거울이 하나 보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거울을 밀었다.
그러자 눈앞이 어두워졌고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이제 정말 정신을 잃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좀 더 빨리 의식을 잃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5부. 어긋난 운명
제군은 눈썹만 치켜뜰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봉구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꾹 참으면서 말했다.
“눈썹 치켜뜨지 말아요. 자꾸 그러면 난… 난…….”
제군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치켜떴다.
“...왜?”
봉구는 얼굴을 붉히며 가까스로 말했다.
“입… 입 맞추고 싶어서 견딜 수 없다고요.”
제군이 가까이 다가와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입을 맞춰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