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의 장편소설 『숨꽃』 상권.
1785년, 현조 9년.
전주 병마절제사 신용하의 집 안채에서 갓 태어난 사내아이가 울음을 터트리고 이어 또 다른 울음소
리 하나가 뒤를 따랐다.
“에그머니! 나리, 나리!” 쌍둥이라니.
그것도 남남도, 여여도 아닌, 남녀 쌍둥이라니.
유교를 국본으로 삼아 근친상간을 최고의 수치스러운 죄 중 하나로 치는 조선 땅에서 남녀 쌍생아는
곧 근친상간의 위험을 내포한 불충한 태생이었다.
전생에 그들이 부부의 인연이었다는 말도 안 되는 미신을 근거로 삼고 있음이라 해도 뿌리 깊은 관습
은 인정을 뛰어넘는 무서운 존재였으므로, 맞물린 상황에 따라서 충분히 한 가문을 풍비박산 낼 만한
위력을 갖는다는 의미였다.
“나리, 날이 밝기 전에 서둘러야 합니다요. 어서 움직이지 않고 뭘 하니! 날이 다 밝기 전에 읍치 입구
서낭당에 얼른 놓아두고 오거라.
” 탯줄에 매달린 태반까지 고스란히 달고서 짚에
싸인 갓난쟁이는 울음소리 한번 제대로 내보지 못한 채였다.
핏물조차 씻어 내지 못한 갓난쟁이를 꼭 품
어 안은 어린 여종이 종종걸음으로 안마당을 나섰다.
여종이 막 중문을 나서려는 찰나
신용하가 무거운 목소리가 산파를 불렀다.
"이보오,봉산댁..."
노론과 소론으로 나뉜 당파의 사화에
나라 안이 살얼음판이던 어느 날.
쌍둥이로 태어나 여인임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연은
열여덟 살의 은평군 이겸을 만난다.
그리하여 불게 되는 연풍의 그림자.